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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평극장 (성핑시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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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승평극장의 내력 이야기

무대시절

최초의 극장 전신 건물은 일제 다이쇼천황시대에基山街106號에 위치한동산여관東山旅社옆에 있었던 2층목조건물의무대로 전해진다. 후일 협소한 건축 부지, 인구 증가, 장기 사용에 의한 건물 훼손, 보수의 미비 등 인수로 결국 태풍에 무너져 원래 건물은 소실되어 버렸다 전한다.

승평좌(성핑쭈어) 시절

일제 쇼와천황 시기에 대만인 吳樹桑와 周天生이 공동 투자해 현 위치인 九份豎崎路와 輕便路의 교차로에 새로이 1층은 석조로 2층은 목조로의 극장 건물을 지어 「昇平座」라고 그이름을 명명하였다. ‘昇平’은 성어 ‘歌舞昇平’에서 온 말로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가무라는 뜻이며, ‘座’는당시 공연장소를 지칭하는 일본어에서 온 것이다. 이 극장은 무대에 회전 궤도, 관중석은 접이식 의자로 청소가 용이하며, 1층 1,2열 복도 바닥에 4개의 홈을 파 선풍기를 장치해 논 간이식 냉방시설 등당시 선진적인 설비를 갖춘 최신식 극장으로 각광받으며 유명해졌다.

승평극장(성핑시웬)

승평극장 시절

2차 대전 후 극장 이름을 「昇平座」에서 「昇平戲院」로 개명하고 1960년대에 건물도 재건축되었다. 신축 건물은 건축 자재에서부터 이목을 끌었다. 상등의 목재를 사용한 지붕에는 방수와 단열이 뛰어난 팰트지에 아스팔트를 입혔다. 2층 벽재단열, 보온, 방음 효과가 뛰어난 벽돌 중간 공간이 빈 보루끄를 사용하였다. 동시 최신 극장 설비도 지금에 근사한 정도로 현대식 극장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전성기의 쇠퇴

1970년대 이후 지우펀 광업산업의 쇠퇴에 따라 주민수가 줄고, 교통수단인 경철로도 철거되자 극장 경영이 위기에 처하게 된데다가 국영 TV방송이 개통되어 성행하자마침내 80년대에 문을 닫게 된 후 그 자취는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게 되었다.

二、화려한 전성기

전성기였던승평극장 시절에는 대만 전통희극인 꺼쟈이시歌仔戲, 영화, 신극, 대만 인형극인 뿌다이시布袋戲 등 다채로운 공연들이 매일 연이어 연출되며 1,2층 관중석을 꽉 채워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심지어 손님이 많을 때는 관중석 복도에까지 공연과 영화를 보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화장실 설비가 수요에 못미쳐 복도에 임시용 소변통들을 놓아 주어야 할 정도라 한다. 매달 극장 문을 닫을 무렵에는 지우펀 골목에 오가는 게다 소리가 끊일 줄 몰랐으며, 광장은 이야기 소리로 술렁이며, 주위 주점들이 밤새 불을 밝히고 장사하는 모습이 번성기를 증언을 하는 대부분 노인 어른들의 기억 속정경이라 한다. 그런 성핑 극장은 지우펀 지역의 주요 오락장소임과 동시 뤠이팡 등 진과스 주변 지역에서도 경철로를 이용해 영화 등 오락을 즐기러 오는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심지어 하루에만도 2-3천 명의 인파가 극장에 몰릴 정도라 한다.

三、 승평극장의부활

신베이시 기념 건축물로의 지정

1994년 태풍의 피해로 인해 극장의 지붕이 훼손되자 그 대로 몇 년간 방치되면서, 원래의 극장 골격은 정면과 주위 벽틀, 2층의 둥근런 바닥판과 양측 ‘ㅅ’자형 벽만이 남겨진 채로 2009년도에 신베이시 정부에 기증이 되었다.신베이시 정부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2010년 6월28일자로기념 건축물로 지정되었다.

시정부는 2010년 10월부터 진행된 건물 복구를 통해 50년대 모습으로 정돈 복원시켰다. 현재는 황금박물관이 관장하는 다공능적 공연 공간으로 거듭나 2011년 8월부터 새로이 운영되고 있다. 복고풍의 매표소, 옛영화들의 선전 포스터, 옛극장 매점 분위기의 간식 등 도처마다 그 옛날의 극장 정경과 분위기가낭만적으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나며 전개되고 있다.

四、관람안내

개방시간

월-금요일:오전9:30-오후5:00

토•일요일:오전9:30-오후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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